김명권(한국트숨센터 공동대표), 홀로트로픽 숨치료 책 추천사
자아초월상담학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던 2015년에 나는 미국 유니온 신학대학 종신교수이며 국내에 많은 독자 팬을 갖고 있던 현경 교수를 초빙하여 이틀간 그분의 워크샵을 가졌었다. 그때 오래전부터 자아초월심리치료 관련 책에서 보던 ‘트숨’에 대해 현경 교수가 소개하였 다. 나는 그분의 강렬하고 신기한 체험만을 믿고 그분을 지도하셨던 잉고 박사Dr. Ingo Jahrsetz가 진행하는 일주일간의 트숨을 체험하기 위해 곧 독일로 갔다. 물론 나의 첫 트숨 체험도 극적이었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내 삶을 바꿔 놓으리라고는 전혀 예감할 없었다. 나의 첫 체험은 숨을 가쁘게 쉬기 시작하고는 잠시 후에 나는 우주에 떠있는 것 같았고 그 상태가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약 두 시간 정도 지속되었던 것 같았다. 그 첫 체험의 결과를 나는 ‘은하수 위에 떠 있는 연꽃’으로 묘사하였었다. 그 후의 트숨 체험에서는 몸에 비교적 강한 에너지 흐름과 같은 체험들은 있었지만 그렇게 인상적인 심리적 체험은 없었다. 첫 체험에서의 큰 의식확장과 다른 사람들이 쉽게 변성의식에 들어가거나 자신의 트라우마를 쉽게 접촉하고 치유되는 것을 자주 목격하여 나는 3년간의 트숨 국제 트레이닝 과정에 등록하였으며 2018년 가을에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그 과정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한국인들 경우 많은 사람들이 쉽게 신비체험을 하는 것에 비해서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원하는 신비체험을 거의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시작한지 세 학기 쯤 지난 후 부터는 개인무의식이나 초월적 상태의 체험은 물론이고 태내체험이나 집단무의식 체험도 가능해졌다. 초기에 이렇다 할 심리적 체험이 없었던 것은 아마도 나의 만성적으로 누적된 신체적 피로와 허약함을 치료하는 물리적인 작업이 중심을 이루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내 경우에는 먼저 트숨을 통하여 신체적인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이로써 나는 최소한 트숨을 통한 우리 자신의 자율적인 내적 치유기능은 우선 몸부터 회복시킨 후 정신적인 회복을 꾀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제일 먼저 나타난 효과는 죽음불안이 사라진 것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수년전부터 스물스물 죽음불안이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죽음불안의 현격한 완화는 놀라운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트숨에서 제일 먼저 일어난 체험들은 나 자신의 탄생과 그 즉시 일어난 전사戰士의 체험이었다. 나의 부족이나 민족을 위해서 어느 덧 전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전투 중 어느 순간 적군의 칼이 내 목을 내리치려 하고 있었고 나는 놀라서 죽음과 그에 따르는 고통을 떠올리며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우려했던 죽음의 고통은 없었다. 이 비슷한 전투들에서 앞장서서 싸웠던 체험들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십자가에 달려있는 예수님을 여러 번 보았다. 이들은 비장하고 고통스럽고 때론 너무나 장엄하고 성스러웠다. 그리고 탄생과 동시에 산모의 입장이 되는 다수의 출산경험을 하였다. 어쨌든 트숨 작업 안에서 죽음을 여러 번 체험해서 그런지 나의 의식에서 죽음불안은 아주 흐릿해져버리고 말았다.
두 번째로 많이 체험한 것은 극도의 오한과 추위 그리고 외로움이었다. 나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방치된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나의 어머니는 자식 넷 중에서 나만큼 쉽게 낳고 키운 자식이 없었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지만 트숨 안에서의 나의 체험은 매우 달랐다. 물론 나의 탄생 직후에 따른 오한 체험이 이번 생에 국한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이와 같은 체험은 마지막으로 석기시대에 어느 동굴에서 얼어 죽어 가고 있는 어떤 삼심 대쯤 되어 보이는 남성과 동일시한 것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평생 호흡기가 약해서 고생했었는데, 특히 어느 트숨 회기에서 오랜 시간 거의 자동적으로 천천히 아주 깊은 숨을 몰아쉬는 특이한 신체적 반응이 있은 후로 호흡기가 급격하게 좋아진 것이다. 나에게 트숨은 먼저 몸부터 치료를 해주는 것이었다. 실제 나만이 아니라 많은 참가자들이 자신이 기대도 하지 않았던 몸치료부터 자발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런 극적인 체험들을 나 자신과 아내 황성옥, 그리고 내가 촉진했던 트숨에서의 참가자들에게서 보는 변화와 변용들을 보면서 그 결과들에 대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특히 아내의 트숨을 통한 다양한 신비체험 즉, 인간내면에서 솟아나는 지복감과 신비로운 이미지와 메시지들은 우리 존재의 근원적인 특성이 본래 신성임을 체험적으로 확신시켜주었다. 내가 보고 있는 이 특별한 놀라운 현상들이 과연 사실이란 말인가? 신비가 이렇게 쉽게 내 눈 앞에서 펼쳐져도 되는 것인가? 어느덧 나는 샤르댕이 말했던 문구에 동의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영적 체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된 체험을 하는 영적인 존재다”.
트숨의 또 다른 심리치료적 강점은 이것은 여지없이 우리의 그림자(개인의 미해결된 신경증적 문제)를 건드리며 초월적 체험으로만 치우친 접근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영적 우회는 얼마나 쉽게 일어나는가? 자신의 내면의 미숙함과 고통들을 마주하고 나아가 해결해나가는 것은 얼마나 고되고 요원한 일인가? 수행이나 영성이란 미명 하에 오히려 그림자를 회피하고 일시적인 위안처인 의식상태의 변성으로 도피하거나 엄연한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트숨은 아주 정직하다. 그리고 아주 영리하고 교묘하기까지 하다. 힘이 약한 사람에게 처음부터 그림자를 마주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이 감싸주고 위로해주고 때로는 부추겨서 힘을 키워놓은 후에 그림자를 만나게 한다. 내 경우에도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언어상담으로는 해결을 보지 못했던 어려서의 트라우마를 비로소 트숨에서 어느 순간 작업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트숨의 방법이 옳고 정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이 틀리다면 백날 시도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 강을 건널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트숨에서의 해결이란 전혀 논리적이거나 선형적이거나 점진적이지 않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의 에고와 이성 중심의 마인드를 납작하게 만들어 버리며 개인마다의 특별한 방식으로 그들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거의 포기했던 그래서 기억도 할 수 없는 심혼 속에 뿌리 깊이 박혀있던 평생의 숙제들을, 심리치료적으로 해결해놓곤 하는 것이다.
신이 인간을 그토록 복잡하게 창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해왔었는데 그 생각이 옳았다. 겉으로 드러난 트숨의 방법론은 매우 간단하고 그 해결의 과정도 단순해 보인다. 물론 머리로 그 원리와 그 의미를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것의 진행을 아무나 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그만큼 파격적인 방법이고 그 결과도 개인에 따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느 심리치료적 접근보다도 더 깊은 전문성을 요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체험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체험을 통합해나가는 과정은 더욱 중요하다. 나는 트숨을 만난 이후 지금은 그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인간의 심혼과 심리치료에 대한 관점을 갖고 살고 있다. 30대초에 집단상담을 만나 첫 비일상적 의식상태를 체험하고는 삶의 의미에 대한 회의懷疑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처럼, 지금은 그로부터 30년 후 트숨을 만나서 삶의 또 다른 신비를 맛보고 있다.
나의 트숨 지도자인 잉고 박사와 쥬디스Judith Miller 교수는 2016년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트숨을 개최하고는 한국인들의 트숨 반응에 깜짝 놀라했다. 왜냐하면 그 어떤 민족보다도 한국인들의 영적 반응이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들 역시 우리 자신들의 반응에 매우 놀랐었다.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트숨에서의 신비스런 영적 반응들을 보고는 나의 눈과 귀를 의심하고는 한다. 이 뜨거운 감성과 신명神明을 가슴에 안고 사는 민족에게 그것을 풀어내면서 살 수 있는 기회가 너무나 적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나라의 외형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마음은 얼마나 메마른가. 단지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그런 공연이 아니라, 깊은 치유의 장으로 연결되는 영감어린 음악과 춤과 신명이 살아나는 트숨 장의 존재는 그야말로 막힌 숨이 트이고 피맺힌 가슴이 뚫리는 생명의 장이다.
많은 치유적 영성 프로그램이 존재하지만 이렇게 역동적인 방법은 보질 못했다. 4시간 내내 뜨거운 에너지가 트숨의 장을 꽉 채우고 브리더들은 자기 존재의 핵심과 극적으로 조우한다. 치유는 의식적으로 의지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본래의 치유적 지성이 자발적으로 작동하며 ‘일어난다’. 현재 그 사람에게 가장 적절하고 필요한 마음 혹은 몸 부분부터 작업이 일어난다. 무의식적 치유 지성은 영특하여 개인마다 자신만의 치유과정의 스케줄이 있는 듯하다. 그러니 우리는 어느 정도의 용기를 내어 그 지성에게 자신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 쉽게 조작하고 쉽게 억압에 속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니 트숨에서 일어나는 체험은 고스란히 우리의 순수한 자율적 작업의 결과이다. 상담자나 진행자의 의도가 개입될 여지도 거의 없다. 나의 이성과 의지와 방어와 속임수가 개입될 여지도 없다. 자신을 신뢰하며 맡기고, 기다리고, 그 자연의 흐름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국내 심리치료 분야와 자아초월심리학 흐름에 비일상적 의식상태를 활용하는 대표적인 치료법인 트숨이 도입되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