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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랄벅 트숨기

랄벅 2021.04.01 18:25 조회 248
2021년 3월 12일 트숨 

150×200mm
사각형 매트 안에서 펼쳐지는 비 일상 체험.
우주적이지만 위대하지도 특별하지도 않고,
일상적이지만 평범하지도 사소롭지도 않다.
이렇게 받아 들이는데까지 2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 3월 12일 오늘, 드디어 2년 간의 워밍업을 마치고 본격적인 '트숨'을 시작했다.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둥 마는 둥., 숨과 충동을 따라 일어나는 움직임, 그 움직임을 따라 쉬어지는 숨, 그 숨 따라 또 다시 솟아나는 충동....이제는 그저 '숨 쉼'으로 '그냥 그러할' 움직임이 일어난다.
무수한 젖들이 주렁주렁 덜렁덜렁 흔들거리며 일으키는 바람결 따라, 소용돌이가 생겨난다. 그 소용돌이에 딸려 올라오는 지난 겨울의 기억들. 

    지난 겨울 _피정 중, 무심코 본 내 얼굴이 추하다고 느껴졌는데, 그 잠깐의 느낌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강력한 강박이 되었다. 방에 쳐박혀 잠 자고 먹는 것 외에는 손거울만 들여다보면서, 내 면상의 기괴함과 혐오스러움에 대놓고 몸서리쳤다.
이 끔찍한 낯을 들고서 여지껏 어찌 살아왔나 싶고, 내 주변 사람들은 이 추악한 낯짝을 어찌 견뎠을까 싶었다. 살고 싶지 않았다. 

얼굴로 향했던 악랄하고 집요한 포커싱은 3개월 정도 지난 어느 시점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스르르 사라져버렸다.
어리둥절할 새도 없이 곧이어 들이닥진 기억들의 쓰나미!
내가 경험한게 맞나 싶을 정도의 많은 기억들이 생생하게 상영되었다. 살아오면서 내가 투사했었던 사람ㆍ사건들이 선명한 증거 영상을 앞 세워 연이어 등장했다. (트숨 장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나눴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_ 

갑자기 침범당함으로써 속절없이 마주해야만 했던 그 그림자들이 오늘 이 매트 위에서 소용돌이 친다. 이미 마주친 경험이 있어서인지 망설임 없이 그 속으로 뛰어든다.
나아갈 길도 없고 물러설 길도 없는 사각 매트 위, 그림자와의 적나라한 몸 섞음.
몸이 회전되기 시작하면서 비명을 질렀지만 완벽하게 음소거된 목소리. 비명을 대신한 몸뚱이의 회전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



치열하고 집요하게 겪어낸 지난 2년의 트숨 체험을 돌아보면, 모든 외부 상황은 나의 내면 상태의 현현이었고, 그것의 기준은 '몸'이었다.
그래서인지 2019년도는 몸의 온갖 부위들을 기존의 고정된 인식으로부터 끊임없이 해체하는 경험들을 했었다. 골반, 어깨, 팔다리, 머리 등 신체 각 부위의 외골격에서부터 장기와 성기, 뇌, 각종 근육 등의 내부 기관으로 이어지던 변형, 재조직, 튜닝의 체험들.  

2020년도는 살아오는 동안 고착되었던 (대인)관계 패턴의 해체와 재구성이, 브리더와 씨터 관계를 통해 반복 체험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몰랐던, 알면서도 모르고 진짜 모르기때문에 알 도리 없었던, 세포 차원의 트라우마들이 모조리 재경험되었던 것 같다. 마치 현미경으로 세포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서 '숨죽이며 집도하여, 트는 숨'이었다. 역설적이지만 그랬다. 

이처럼 몸의 외부 기관으로부터 세포 조직으로, 보다 세밀해진 감각 체험은 태내에서부터 결핍되었던 '접촉'을 체험하도록 해주었다. 이러한 접촉의 체험은 나아가 인지적, 영적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결국 그 어렵다던 탈조건화로 이어졌다. 

내 체험을 중심으로 그 과정을 요약해보면,
트숨의 장을 넘어선 일상에서 매 순간 트숨이 진행되는 삶을 살게 되었고,
숨 쉬고 있으니, 사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쎈 척, 있는 척, 멋진 척 등등 '~ 척'했던 가면들을 벗어던질 수 있었고,
투사와 망상으로 점철되었던 '관계 얽힘'에서 풀려 나올 수 있었고,
트라우마라는 게, 과거 부모를 포함한 중요한 사람들로부터 기인한 것 보다, 현재 자기가 자신에게 가하는 가혹함에 의한 '진행형 트라우마'가 사실은 더 끔찍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상승의 빛 체험과 하강의 그림자 체험은 심장의 좌우 심방과 같으며, 피 순환과도 같은 빛과 그림자의 순환 과정이 바로 '그라운딩'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빛과 그림자 체험은 따로 떼어낼래야 뗄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림자 체험을 꺼림으로써, 균형을 잃고 영적 우회를 비롯한 심각한 왜곡과 오류 등을 겪게된다.
그러나 트숨의 특징은 주산기 과정의 체험이 핵심이기에, 산도를 통과(죽음, 그림자, 하강)해야만 탄생(삶, 빛, 상승)이 있다.
이 경이로운 메커니즘 덕분에 자신의 그림자는 만나지 않으면서, 빛 체험(신비체험)으로만 얼렁뚱땅 눈 속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첫째, 치유되고 성장하는 것으로 포장하고, 고위 차원의 영성인냥 위장 할수록, 신기하게도 트숨에선 더 티가 난다. 영혼의 관문인 '체험하는 몸'은 가짜 열쇠로는 결코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누구보다 자기자신이 모른척 할 수가 없다. 속임수로 머리와 마음은 낚일지언정, 영혼은 절대 포섭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일방향의 편협은 경화(硬化)를 일으키고, 결국 오작동으로 삐그덕대다가 멈춰버리는건 시간 문제이기 때문이다. 


매트 위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트숨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죽음(에고데쓰)' 및 '써랜더 체험'은 특별한 신비체험이 아니라, '리얼한' 현실 체험에 가깝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구토 증상 및 갖가지 신체적 증상과 이를 위한 바디워크는, 비물질적인 트라우마를 물질적 체험으로 변환시켜, 실재적인 감각 차원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현실과의 연결고리가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체험의 가장 큰 효과는, 치유다. 생물학적인 몸 치유는 물론이거니와, 집단무의식에서부터 영혼을 아우르며 되살리고 깨우는 우주적 차원의 치유가 일어난다. 또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문제적 사건 및 사람들과의 관계 방식을 '비 문제화'시키는 관점을 지니게 함으로써, 지금까지 반복해왔던 (해결 방법 또는 애씀의 행위)패턴들이 무용지물이 된다.
즉, 사회화 과정에서 내사되고 고착된 패턴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멈추고, 머무르는 용기'를 스스로에게 허용하게 되면서, 내면의 지혜가 실재적인 힘으로 현실화되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나아가 기존 패턴의 해체와 재 구성을 도와준다. 

''방법을 만난 것은 길을 만난 것이고, 그것이 구원이다.'' -몰라 

여기까지가 지난 2년 동안의 트숨 여행기이다.
갑작스런 충동에 이끌려 생전 처음으로 게시판에 두서없이 써보았는데,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나름의 자랑질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보이는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걸 믿었던, 그러나 그만큼 의심했기에 불행했던 '과거의 나'에 대한 쓰담쓰담?
비물질 차원의 세상이 물질계보다 더욱 자연스럽게 접촉되고, '자기 사랑'에 익숙해져 가는 지금의 나를 칭찬?
앞으로 한계 없이 펼쳐질 몸, 영혼의 감각 확장과 영적 재능의 성장에 대한 설렘? 

무튼, 올해 트숨 또한 매우 흥미진진하다. 

이미 있는, 나의 신성과 당신의 신성께 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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